성전에 대한 우상적 태도 비판
44~45절에서 스데반은 성막과 성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막에 대한 언급은 좀더 구체적이나, 성전은 너무 간단하다.
성막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모양대로 정확하게 되었다는 긍정적 언급은 있으나(44절), 성전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스데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을 몰록의 장막과 성신(星神) 레판을 섬긴 우상숭배의 역사로 제시하였다. 44절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장막(성막)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신의 장막에서 몰록과 레판을 섬긴 것이 아님을 스데반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증거의 장막은 광야 40년 동안만 아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대를 거쳐서 다윗 때까지 줄 곳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었다(45절).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 야곱의 집을 위해 장막(처소)을 준비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다윗 자신이 이 소원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이 실현했다(47절).
47절에 언급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관한 입장은 학자들 사이에 현저하게 다르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스데반이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본다. 이런 증거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로, 47절에 대립의 의미를 수반하는 접속사 데(그러나)가 사용되었다. 둘째로, 다윗이 세우고자 했던 것은 장막(스케노마)인데, 솔로몬이 만든 것은 집(오이코스)이다. 셋째로, ‘손들로 만든 것’이란 표현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넷째로, 49~50절에서 이사야 66:1절의 인용은 이러한 이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스데반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니고, 처음부터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가는 배도의 행위로 간주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해는 몇 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극단적인 입장이다. 첫째로, 솔로몬의 성전건축과 봉헌과 관련하여 어떠한 부정적인 진술도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모세가 광야에 세운 성막에 영광의 구름이 임했던 것과 같이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동일한 영광의 구름으로 성전에 임하게 하셨다(왕상 8:11, 대하 5:13~14, 7:1~3).
둘째로,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의 웅장한 성전이 하나님을 그곳에 가두어둘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정했다(왕상 8:27, 대하 6:18).
셋째로, 성전의 영구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과 신실함에 달려있다. 왕과 그의 백성이 모세 언약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성실하게 따를 때만 성전의 영구성이 보존되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저버릴 때는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할 의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9:6~9, 대하 7:19~2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렘 7:1~4).
넷째로, 스데반은 성전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집’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46절). 성전이 야곱의 집을 위한 것이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를 섬기고 그에게 헌신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소이지, 그들이 하나님을 그곳에 가두어놓고 그들의 욕심대로 하나님을 조종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준다. 자신이 만든 만물을 우주적인 거처로 삼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솔로몬의 성전을 자신의 유일한 거처로 삼았다고 간주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것이다(49~50절).
선지자 예레미야가 성전을 우상화하는 백성들을 비판하고 공격했던 것과 같이(렘 7:1~4, 26:8~9, 18~19), 스데반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우상화된 태도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데반은 백성들에 의한 성전의 남용과 우상화를 공격한 것이다
유상섭 교수(총신대학교·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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